'청춘일기'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1.09.24 인연의 시작 8
  2. 2011.05.23 그녀의 자전거 2
  3. 2011.04.02 반창고
  4. 2011.03.03 졸업 6
  5. 2011.02.03 향수와 기억 2
  6. 2010.08.11 울산 단상 2
  7. 2010.07.28 읽기의 즐거움 4
  8. 2010.07.11 몽롱 6
  9. 2010.06.30 The bird of music 11
  10. 2010.06.15 햅틱 인터랙션과 여자 10

인연의 시작

2011. 9. 24. 22:10 from 청춘일기
삶이란 게 계획대로 되면 참 좋겠지만, 보통은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그대로 안 될 때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세우는 계획이라는 건 가능한 모든 변수를 다 넣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거기에 직관이라는 능력을 추가해서 방향을 설정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계획의 가장 큰 허점은 '가능한 모든 변수'라는 게 늘 완전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 누구도 완벽하게 모든 변수를 고려하지는 못한다. 신이 아닌 이상.

언제부턴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인생의 진짜 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늘 내 예측대로 삶이 흘러간다면 그 얼마나 따분한 삶이란 말인가. 우리의 인생은 '우연'이 개입되면서 롤러코스터를 타곤 하는데  그걸 피곤하게 느낀다면 내내 불행한 삶이 될 뿐이지만 즐겁게 받아들인다면 인생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렇게 서두를 길게 쓴 이유는 말도 안 되는 여러 우연이 겹쳐 결국 필연이 되는 과정을 경험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 초부터 이어진 많은 인위적 만남은 계획하고 준비된 만남이었지만 모두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제 소개팅은 안 할 거야"라고 선을 그은 순간 우연은 시작되었다. 나도 아직 이 인연이 어떻게 이루어진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디선가 내가 바라던 그런 사람이 툭 하고 나타났다. 이번엔 정말 소중하게 대해야지. 또 어떤 알 수 없는 우연이 개입해도 균열이 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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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자전거

2011. 5. 23. 01:21 from 청춘일기
학교에 자전거를 남겨두고 그녀는 떠나갔다. 그 자전거는 내가 생일선물로 줬던건데, 깜짝 놀래킬 요량으로 생일 전 날 사다놓고 새벽에 온갖 풍선으로 장식 한 후 기숙사 창문 바로 아래 잘 보이는 곳에 묶어놓았더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꼭 창문을 열고 아래를 보라는 문자와 함께.

이별을 통보받고 얼마 후에 부탁을 한 가지 했다. 제발 그 자전거만은 가져가달라고. 버려도 좋으니 학교에서만은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한동안은 자전거가 보일까봐 학교에 가기 꺼려했다. 어쩔 수 없이 학교에 가야 하는 날엔 혹시나 하고 자전거를 확인하러 일부러 건물을 돌아서 가곤 했는데, 여전히 그 곳에 먼지가 쌓인 채 묶여있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고, 얼마 전 학교에 갈 일이 있어서 다시 자전거가 세워져 있던 건물 앞을 지나가는데 드디어 자전거가 사라졌다. 그녀가 가져갔는지 경비아저씨가 치우셨는지 알 길이 없지만, 내게는 무언가 이정표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 자전거를 볼 때 마다 느꼈던 가슴 싸한 느낌도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Let it be, let it go, let it flow..

옛날 조병준씨 책에서 본 말인데, 이런 순간에 참 도움이 된다. 시간은 흐르고, 자전거도 사라졌다. 이제 정말로 내 안에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왔나보다. 사랑했으니까 상처도 주는거라는 김여진씨 말처럼, 사랑의 댓가는 잔인하지만 그 때문에 또 사랑을 포기할 순 없는것 같다. 난 그리 쿨한 사람이 아니라서 내 안의 뜨거움이 더 식는데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이제 또 한 걸음 나아가야겠다.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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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고

2011. 4. 2. 08:59 from 청춘일기
언젠부턴가 그 애 손에 상처가 끊이지 않는 걸 보고는 가방 속에 반창고를 하나 사서 늘 가지고 다녔다. 

며칠 전 예비군훈련을 받고 나니 길이 안든 군화 덕분에 뒤꿈치가 또 까졌다. 출근 전 양말을 신다 상처에 양말이 늘러 붙을까봐 가방 속 반창고를 꺼내서 붙였다.

그 때 산 반창고는 여전히 가방에 들어있는데 더 이상 붙여 줄 사람이 없다는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 발꿈치 상처는 괜찮아졌지만 마음의 상처에는 붙일 반창고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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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2011. 3. 3. 01:14 from 청춘일기
졸업을 했다. 3월 2일에 학교를 가지 않은게 대체 몇 년 만인지. 중간에 방황의 시간이 있었지만 어쨌든 대학입학 후 10년만에 학교를 벗어났다. 학부시절은 즐거웠지만 랩에 있던 3년의 시간은 결코 녹녹치 않았다. 6시 퇴근에 주5일 근무하는 회사를 한 달 남짓 다녀보니 휴일도 연휴도 퇴근시간도 없이 달려왔던 그 3년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래도 고생했던 덕에 원하던 회사에 취업을 하고, 즐거워하고 잘할 수 있는 업무를 실제로 하게 됐고, 연봉도 올랐고, 출퇴근을 비롯한 걱정했던 여러가지 문제도 너무나 쉽게 풀려서 참 이렇게 다 좋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신은 역시 한꺼번에 다 주지는 않는가보다. 여자친구는 뜬금없는 이별을 고했고, 학창시절의 끈은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듯 한순간에 모두 끊어져버렸다. 

잠들기 전, 적막이 흐르는 통근버스, 퇴근하고 집까지 걸어가는 밤길 문득 문득 가슴속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지만 추억이라 부르는 것들은 망각과 미화의 시간이 오기까지는 잔인하기만 할 것이다. 그 시간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지만.

출근을 해야한다는 핑계로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석사학위 따위야 개나 줘도 상관없지만 그보다는 추억을 들추는 그 공간과 의식 자체가 싫었다. 졸업식 날 첫 회식을 하고 못마시는 술을 잔뜩 마신 후 화장실에서 홀로 속을 게우며 느꼈다. 항상 비우는게 채우는것 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얼마나 더 비워야 다시 채울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언제쯤 외로움에서 졸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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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와 기억

2011. 2. 3. 23:09 from 청춘일기
비염이 있어서 다른 감각에 비해 코는 그다지 예민한 편이 못 된다. 그래서 난 내 코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심지어 상한 케익을 맛있게 먹은 적도 있을 정도다. 

설 연휴 전날 방을 대청소하면서 잘 안 쓰던 서랍장을 열었는데 스물 한 살 무렵 사귀었던 첫 여자친구가 준 작은 싸구려 향수가 나왔다. 워낙 오래된거라 별 생각 없이 남은 향수를 세면대에 버리고 병은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화장실에서 향수냄새가 계속 나는거다. 향기가 어찌나 강한지 둔감한 내 코로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건 그 향기를 맡은 후 잊혀진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촉매처럼. 말도 안되게 어설프고 불안하고 풋풋했던 그 시절 어린 사내의 좌충우돌 연애가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전에 본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첫사랑의 기억에 대해 루시드폴이 이렇게 말을 했다. "의욕은 앞서는데 방법도 모르고 능력도 없었죠." 

그런데 그 때에 비해 지금은 과연 얼마나 성숙해진걸까? 나이를 먹으면서 해도 되는 말과 하면 안되는 말을 구별하는 능력과, 기분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게 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 같긴 한데, 실제 마음의 깊이가 얼마나 더 깊어진건진 잘 모르겠다. 여전히 의욕은 앞서지만 방법을 모르는 것도 마찮가지고. 그래도 이제 그때처럼 방법을 모른다고 불안하지는 않다. 어릴적엔 수학 공식처럼 연애도 반드시 해야하는 과정이 존재하는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란걸 깨달았으니까. 이제는 방법을 창조하는 여유도 생겼다. 연애는 걍 하는거라는 임경선씨 말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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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단상

2010. 8. 11. 03:47 from 청춘일기

공장이 많은 공업도시니만큼 뿌연 공기와 을씨년스런 공단의 풍경을 기대하고 갔는데 막상 울산의 풍경은 나의 예상을 보란 듯이 배신했다. 너무나 멋진 강과 바다가 공존하는 도시. 우리나라 최고의 평균소득을 증명하듯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밤바다와 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별들의 향연은 수도권에서 절대 보지 못하던 풍경들이었다. 너무 짧게 다녀온 게 정말 아쉽다. 똑같은 코스로 또 다녀와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수도권에서 태어나 군대까지 수도권 안에서 마친 나 같은 인간에게 가끔 가는 지방, 특히 전혀 연고가 없어 가 본 곳이 별로 없는 경상도는 늘 이렇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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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의 즐거움

2010. 7. 28. 23:50 from 청춘일기
난 책 읽는걸 무척 좋아한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내 취미이다. 심지어 우유곽이나 빵 봉지에 있는 글자까지 모두 다 읽는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원에 오면서부터 1년에 읽는 책의 숫자가 눈에띄게 줄어들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읽는 행위가 너무 피로해져 버렸다. 내 책상에 있는 모니터 3대에는 논문부터 통계데이터, 프로그래밍 언어까지 수 많은 텍스트가 어지럽게 뿌려져있고, 좌우로 이런 저런 책과 문서들이 어깨 높이만큼 쌓여있다. 그렇지만 내가 연구실에서 근 3년간 보아온 이런 텍스트들에선 어떤 감동과 희열도 느낄 수 없었다. 이건 그냥 앞으로 먹고살기 위한 스킬을 쌓는 행위였을 뿐이다. 지난 3년여 세월 동안 너무 읽기에 치중한 나머지 진정한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이다. 취미는 취미로 남겨둘 때 가장 즐겁다더니, 취미가 생활이 되니 역시나 전혀 즐겁지 않구나. 10권짜리 은하영웅전설을 너무도 즐겁게 읽던 중학생 시절이 그립다. 그 땐 도대체 왜 다나카요시키가 이렇게 짧게 소설을 끝냈을까 무척 원망도 했었더랬다. 요즘엔 장편 소설 읽기가 너무 버거워서 단편만 보곤 한다. 졸업을 하면 다시 예전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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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롱

2010. 7. 11. 00:33 from 청춘일기
밤을 거의 새고 의자에서 조금 눈을 붙이고 일어났더니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하다. 밤새 WEKA를 이용해서 연속된 값을 분류하기 위해 raw data를 어떻게 전처리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다 키보드에 손을 얹은 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잠든 사이에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이 떠올랐다. 하루정도 더 고민하면서 데이터를 만지다보면 뭔가 윤곽이 잡힐 것 같다. 

이 와중에 그래도 할건 다 하며 산다. 운동장 산책을 했고, 드디어 청춘의 문장들을 다 읽었다. 그리고 트위터에서 모 님이 추천해주신 렛미인 소설을 빌렸다. 영화는 정말 숨막히게 아름다웠는데, 그 분은 영화보다 더 좋았다고 하니 기대하며 읽어봐야겠다.

-

청춘의 문장들은 초반엔 그냥 평이하다 못해 조금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뒤로 갈 수록 작가의 경험+유머가 빛을 발했다. 특히 김광석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내 개인적인 경험들을 연상시키며 가장 기억에 강렬히 남았다. 

그러면 다들 처음에는 그 노래를 듣다가, 하나 둘 노래를 따라부르다가, 그러다가는 이내 다들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안다. 내가 왜 김광석의 노래를 그토록 목청껏 부르는지. 하지만 그들은 또 왜 그처럼 목청껏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나름대로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내 짐작이 정확하게 맞는지 그건 지금도 알 도리가 없다. 어쨌든 술에 취하면 우리는 김광석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내가 기억하는 청춘이란 그런 장면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애매한 계절이고, 창문 너머로는 북악 스카이웨이의 불빛들이 보이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일들을 생각하며, 하지만 함께 김광석의 노래를 합창한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하지만 과연 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내 기억 속 그 정릉집의 모습은 거대한 물음표와 함께 남아있다. 그건 아마도 청춘의 가장 위대한 물음표이지 싶다.

대학에 입학했던 2001년엔 나 또한 저런 생활을 했다. 학교 잔디밭에서 촛불을 켜 놓고 새우깡 안주에 소주를 들이키며, 술에 취하면 선배들이 연주하는 김광석 노래를 처연하게 따라 부르곤 했다. 스무살에 무슨 슬픔이 그렇게 많았는지 심지어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지금 생각하면 살짝 민망한, 그렇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

김광석 에피소드는 내 청춘의 빛나던 순간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에센스.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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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rd of music

2010. 6. 30. 18:13 from 청춘일기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는 처음 가보는 까페에서 홀로 맛없는 요구르트 스무디를 마시며 청춘의 문장들을 읽다가, 나 때문에 주인 아줌마가 드라마를 못보시는것 같아 짐을 싸서 나왔다.

약속 시간이 아직 한 시간 더 남았다. 무작정 플레이를 누른 아이팟에는 불어 이름을 한 미국 여자애들(Au Revoir Simon)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그 동네 어귀를 거닐었다. 슈퍼에서 떨이 판매하듯이 우스운 억양으로 휴대폰 판촉을 하고 있는 청년과 무심한듯 지나치는 사람들, 핫팬츠 아래로 주머니가 늘어져있는데도 모르고 걸어가는 여인(을 무려 3명이나 보았다), 남자친구와 정답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여고생, 두 손 가득 장을 보고 힘겹게 애들 둘을 데리고 집에 가는 아주머니, 양복 바지에 쓰레빠가 유니폼처럼 너무 잘 어울리는 동네 슈퍼 아저씨. 나랑 다르게 사람들은 무던히도 열심히 살아간다.

상가 지역을 벗어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시모네 언니들의 노래를 1번 트랙부터 이어서 이렇게 집중해서 듣는건 처음인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Dark Hall이 흘러나왔다. 지난 밤을 지새운 덕분에 피로가 몰려왔다. 약속장소 근처의 정자에 앉아 가만히 음악을 듣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바람은 시원했다. 자세는 점점 뒤로 기울어지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누웠다. '이마를 스쳐 구두코를 맴도는'바람 덕분에 살짝 잠이 들었었나보다. 가로등 불이 켜지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휴대폰의 액정엔 금방 나올거라는 그애의 문자가 담겨있었다. 

이어폰에선 다시 첫 곡 The lucky one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원한 엔딩 같은 첫 곡. 하루의 끝이 언제인지 우리는 안다고 노래하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 멀리 걸어오는 그애를 맞이했다. 우리의 하루도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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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정신없이 논문쓰다가 문득 든 생각.
왜 햅틱 인터랙션에 대해 고민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까먹기 전에 써놔야지ㅋㅋ

-

GTO라는 만화의 주인공 오니즈카는 우연히 학교 선생님이 되지만, 천성이 여자를 밝히는 성격이고 그걸 숨기지 못해 여학생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한다. 

때문에 다들 오니즈카를 욕할 때 어떤 학생이 오니즈카를 이렇게 평가한다.

"적어도 오니즈카는 여자를 좋아하는걸 숨기지 안잖아."

오니즈카보다 더 여자를 밝히지만 안그런 척 하는 많은 중년 남성 학교 선생님들에 비해 차라리 그걸 드러내놓는 오니즈카가 더 낫지 않냐는 말이었다. 

오니즈카는 적어도 '척' 하지 않는 인간이었고, 그게 그의 순수한 매력이었다. 

-

어릴적부터 모범생 이미지에 (남들 보기에)선한 인상을 갖고 태어난 죄로, 누구나 나를 자세히 알기 전엔 지레 착한 인간이라고 짐작을 하곤 한다. 이건 내 인생에 큰 짐 중 하나인데, 그들의 기대치만큼 내가 착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딱히 나쁜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내 행동에 실망을 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이런 이미지를 탈피해보고자 오니즈카의 방법을 역 이용하기로 했다. 여자를 밝히는 '척' 하는 것이다. 사실 남자보다 여자를 100만배 좋아하기 때문에*-_-* 척은 아니지만 주위에서 워낙 평생 야동도 안볼것 같은 이미지로 생각해주니 오히려 그런 면을 불식시키는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여자를 좋아하는 이미지로 각인을 시켰다. 사실 방법은 간단한데, 오니즈카처럼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이었다. 컴퓨터 바탕화면과 휴대폰 배경은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으로 도배를 하고, 연구실 책상 앞에 소주 포스터를 붙이고, 지나가는 이쁜 여자에게 과도하게 관심을 갖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 만으로 이미 난 여자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과정이 나름 재미도 있거니와 주위 사람들에게도 좀 더 유머러스한 인간으로 보이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늘 반작용이 존재하는 법. 반 장난으로 시작한게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이미지로 굳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되돌리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단적인 예로 얼마전 World IT Show 부스에서는 출석체크하러 온 SJ가 심지어 이런말을 했다. 

"오빠 밖에 이쁜 언니들 많던데 제가 사진 찍어드릴까요?"  
"왜?" 
"오빤 이쁜언니 좋아하잖아요"

또 주위 여자들이 날 전혀 진지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는데, 한 때 주위 사람에게 소개팅 시켜주기 좋은 인간으로 통했으나 이제는 자기와 친한 사람에게 소개시켜주기 기피하는 인간으로 바뀌었다. 단지 여자를 밝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옆자리 여자 후배는 같이 사는 룸메이트를 내게 절대 노출하려 하지 않는다. 동생들을 보호-_- 해야 한다나..

-

이제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야겠다. 장난으로 시작한건데 이제 진짜 내가 그런건지 이게 연기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진짜 숨겨진 본성이 드러나는 것일지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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