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자전거

2011. 5. 23. 01:21 from 청춘일기
학교에 자전거를 남겨두고 그녀는 떠나갔다. 그 자전거는 내가 생일선물로 줬던건데, 깜짝 놀래킬 요량으로 생일 전 날 사다놓고 새벽에 온갖 풍선으로 장식 한 후 기숙사 창문 바로 아래 잘 보이는 곳에 묶어놓았더랬다. 아침에 일어나면 꼭 창문을 열고 아래를 보라는 문자와 함께.

이별을 통보받고 얼마 후에 부탁을 한 가지 했다. 제발 그 자전거만은 가져가달라고. 버려도 좋으니 학교에서만은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한동안은 자전거가 보일까봐 학교에 가기 꺼려했다. 어쩔 수 없이 학교에 가야 하는 날엔 혹시나 하고 자전거를 확인하러 일부러 건물을 돌아서 가곤 했는데, 여전히 그 곳에 먼지가 쌓인 채 묶여있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고, 얼마 전 학교에 갈 일이 있어서 다시 자전거가 세워져 있던 건물 앞을 지나가는데 드디어 자전거가 사라졌다. 그녀가 가져갔는지 경비아저씨가 치우셨는지 알 길이 없지만, 내게는 무언가 이정표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동안 자전거를 볼 때 마다 느꼈던 가슴 싸한 느낌도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Let it be, let it go, let it flow..

옛날 조병준씨 책에서 본 말인데, 이런 순간에 참 도움이 된다. 시간은 흐르고, 자전거도 사라졌다. 이제 정말로 내 안에서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 왔나보다. 사랑했으니까 상처도 주는거라는 김여진씨 말처럼, 사랑의 댓가는 잔인하지만 그 때문에 또 사랑을 포기할 순 없는것 같다. 난 그리 쿨한 사람이 아니라서 내 안의 뜨거움이 더 식는데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이제 또 한 걸음 나아가야겠다.
살아가자. 

'청춘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연의 시작  (8) 2011.09.24
반창고  (0) 2011.04.02
졸업  (6) 2011.03.03
향수와 기억  (2) 2011.02.03
울산 단상  (2) 2010.08.11
Posted by 우연의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