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 연말 휴가

2011. 12. 26. 22:21 from 소소한 일상
12월 24일부터 1월 1일까지 총 9일의 연말 휴가가 생겼다. 대단한 계획이 없던 나로선('계획 = 돈'이라 계획 세우기가 무섭다), 그리고 연차휴가가 얼마 없는 신입사원이라 강제로 5일치 휴가가 없어지는 이 긴 휴가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24,25가 지나가고, 26일은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 원없이 빈둥거렸다. 하루 종일 빈둥거리면서 한거라곤 낮잠을 자고, 고장난 인터넷을 드디어 고치고, 그 와중에 트위터를 끊임 없이 본 것과 드디어 주성치의 서유기 두 편(일명 서유쌍기)를 다 본 것이다.  

26일 오늘은 정봉주씨가 수감된 날이다(여기서 잠깐, 한 번 의원 하면 평생 전 의원 붙이는 이런 호칭은 잘못됐다고 본다. 영화 한 편 찍으면 평생 감독이고, 책 한권 내면 평생 작가고, 내 교수도 아닌데 겸임만 돼도 다 교수인건 대체 뭐냐). 우석훈씨는 정봉주씨보고 살아서 신화가 됐다고 나중에 대통령되면 자기가 청와대 정책실장인가 하면서 돕겠다고 그러는데 요즘 너무 혼란스러운 정국에 머리가 이상해진건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되고, 정부에선 전자주민등록증을 추진한다고 하고, 트위터랑 포털 뉴스만 보고 있자니 세상 모든 문제가 나에게 다 쌓이는 것 같았다.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내 의견을 정립하는게 좋은 습관이긴 한데 내가 시사평론가도 아니고 이렇게 다 관심 갖다간 우석훈씨처럼 될게 분명하다. 

어쨌든 트위터보며 세상 걱정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게 빈둥거리는 일이다. 1년간 회사에서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경험해 보니, 많은 경우 창의적 아이디어의 원천은 빈둥거리면서 봤던 만화책과 영화, 쓸데없이 돌아다니던 웹서핑에 얻은 각종 잡 지식들, 남는 시간에 했던 공상들이었다. 생산적인 일을 하는건 주 5일 하루 8시간이면 퍼포먼스를 내는데 충분한 것 같다. 주성치의 서유기 월광보함과 선리기연을 보며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수백번 감탄을 했는데 아마 생산적인 내용의 책을 보거나 무언가 공부를 했다면 절대 얻을 수 없는 시간이었을 거다.

남은 휴가 뭘 하면 생산적일까 머리를 짜봤지만 뭘 해도 이보다 더 생산적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역설적인 사실은, 너무 많은 계획과 걱정이 인생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나타내는 징표인 것 같다. 정치적인 영역에서만 '쫄지마!'가 중요한게 아니라 인생을 사는 자세에도 쫄지 않는게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초등학교때도 그 동그란 시간표를 지켜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거 없어도 즐겁게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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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연의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