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연대가 필요한 이유

2011. 12. 27. 12:11 from 목소리
군대에서 늘 느꼈던 이상한 점 하나는, 간부들이 우리(병사)를 그리도 부려 먹는데 아무도 저항하지 않는 것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그 스트레스를 우리끼리 푼다는 것이다. 병사들은 2년간 갇혀 있으면서 각종 노동력을 행사하는데 일당은 하루에 천원밖에 안 되는 그런 존재였다(지금은 조금 많아진 것 같지만 그래봤자 몇천 원).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국가에 대한 당연한 봉사'라고 생각하는 이들이야 별 불만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에이 씨 좃같다'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럴 때 우리끼리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수많은 영화와 소설에 묘사되었지만, 병장은 상병을, 상병은 일병을, 일병은 이등병을 까는 식이다. 그렇게 우리의 억압된 젊음은 (분명히 병 상호 간에 지시,명령,복종을 할 수 없다고 복무규정에 나와 있음에도) 공식적으론 있지도 않은 계급적 차이를 만들고 부풀려서 그들 간에 서로 까고 까이는 관계를 만들며 분출됐다.

늘 나는 이 점이 의문이었다. 우리가 저항해야 할 대상은 우리끼리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다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끼리. 병장은 단지 그 상황을 2년 가까이 견딘거고 이등병은 이제 견뎌야 할 시간이 2년 남은 것 뿐이다.

체제는 이렇게 아무런 차이도 나지 않는 우리들의 차이를 자꾸 부풀리고, 그들 사이에 싸움이 나게 하여 진짜 적인 자신에게는 아무런 저항이 오지 않도록 상황을 만들어낸다.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 같다고? 군대는 그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 줄 뿐이다. 똑같은 상황이 우리의 학교에서, 회사에서, 더 크게는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넥타이를 맨 노동자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시하고 욕하다가 그 다음 차례인 자신이 명예퇴직 당하는 일은, 우리끼리의 계급적 차이를 부풀려 온 결과이다. 

나는 진보 대 통합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 정치공학적 결합은 당장의 선거에서 승리를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건 우리가 생활 속에서 연대하는 것. 우리의 차이가 저들과의 차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서로가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것. 이게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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