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무렵 알고지내던 한 아이는 비가 오면 운동장을 뛴다고 했다. 울면서 뛰어도 티가 안나기 때문이라나. 그 땐 그 애 인생이 왜 그렇게 슬픔으로 가득 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기분을 느껴보려고 비오는 날 동네를 우산 없이 걸어본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처음 보는 낮선 사람들이 날 걱정해주고, 우산을 빌려주거나 씌워주려고 했는데 난 괜찮다고 번번히 거절을 하며 길을 걸었다. 비에 홀딱 젖어보니 약간은 그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월이 지나 김광석의 노래에 담긴 느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울면서 달린다는게 얼마나 큰 위로를 주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후로 비가 오는 날이면 늘 도서관의 창가에서 공부를 했다. 창문을 때리는 비를 보면 가슴속에 슬픔이 가득 차곤 했는데 이상하게 그 먹먹한 느낌이 좋았다.
한 동안 비오는게 마냥 귀찮고 번거롭게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일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고 감정은 메말라갔다. 다행히도 요즘은 다시 비가 내 감성을 자극한다. 없어진줄 알았던 감정의 결들이 다시 살아난 기분이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내 잠을 방해하지만, 비가 오던 말던 피곤에 지쳐 잠에 들던 그 시절에 비하면 천국에 온 기분이다. 오늘같은 날엔 내면의 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