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요

2010. 5. 22. 01:04 from 목소리
왼손 팔목에 나도 모르게 찰과상이 생겼다. 딱 시계를 차면 가려지는 부분인데, 시계때문에 생긴것 같진 않고 어딘가 긁힌것 같다. 별거 아닌 상처인데 키보드를 치기 위해 손을 올리면 자꾸 빨갛게 변한 부분이 눈에 거슬리고 신경쓰인다. 그래서 한 번씩 만저보면 살짝 쓰라린 느낌에 내 팔이 가련해진다. 내 손목처럼 나도 모르게 상처 받고, 나도 모르게 상처 주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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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두 살의 오월에 난 누군가에게 무척 잔인했던것 같다.

당시 난 새롭게 도전했던 일에는 실패하고, 인생의 무력감을 안은 채 두달 후 입대를 기다리는 방황하는 영혼이었다. 사귄지 1년이 넘은 여자친구는 상처가 많은 아이였고, 난 그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게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날 행복하게하던 그 일이 날 지치게 만들었다. 여자친구에게 지친 마음과, 조만간 군대에 갈 거라는 점과, 군대 가기 전 하던 일이 너무 바빴다는게 원인이 되어 점점 여자친구에게 소홀해지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니 신경은 계속 쓰고 있었지만, 신경 안쓰는 척 하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었다. 조제의 남자친구처럼 울면서 뛰쳐나올 용기도 사실 없었던것 같다.

5월엔 그 애의 생일이 있었지만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비오던 밤 그애에게 전화가 왔다. 내게 단 한번도 큰소리를 내거나 화를 낸 적이 없었던 그애가 마구 울부짖으며 내게 소리쳤다. 내가 너한테 도대체 뭐냐고.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냐며..

너무 놀라서 비오던 밤 그애에게 달려갔다. 말 없이 익숙한 그 동네를 돌고 또 돌았다. 무슨얘기를 나눴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군대에 다녀온 후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언덕을 넘어서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그 애는 나를 계속 바라보고 거기에 서 있었다.

두달 후 난 군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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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sh의 블로그에 가보니 오 자히르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며 인용을 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지나가면서 그들의 눈빛에 두 가지 종류가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밤 한가운데서 고독을 선택한 척하는 사람들의 거만한 시선과 혼자인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눈빛.
전도서는 '찢어버릴 시간이 있고 꿰멜 시간이 있다'고 말하지만, '찢어버리는 시간'은 때로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가장 나쁜건 혼자서 비참하게 제네바의 거리를 걷는게 아닙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그가 내 삶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최악의 경우입니다.

오 자히르를 세 번이나 봤는데 왜 난 이 문장을 기억하지 못했을까. 여전히 난 최악의 경우를 만드는 실수를 계속 저지르며 살아간다. 하지만 스물 두 살의 그 실수가 가장 가슴이 아프다. 

오늘은 그 애가 결혼하는 날이었다. 몇 년째 방치된 싸이월드는 무심하게도 그 애의 청첩장을 보게 만들어주었다. 이래서 내가 싸이월드를 싫어해. 


올해 오월은 스물 두 살의 오월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녀에게 행복한 오월로 기억에 남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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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연의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