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공연보기 소원을 이뤘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에 루시드폴 공연을 봤기 때문이다.
미선이부터 팬이었으니 10년째 그의 앨범을 열심히 사모으고 그의 노래를 기타로 치는 열혈 팬인데 막상 공연은 처음 봤다. 근 3년간은 대학원생이라 공연 볼 여유가 없기도 했고, 루시드폴 또한 유학생 신분으로 막상 공연을 별로 안했다. 이래저래 인연이 없던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드디어 3박자 - (무엇보다 중요한) 같이 볼 사람, 나의 여유 시간, 적절한 시기에 하는 공연 - 가 모두 맞아서 남들은 쉽게 여러번 보는 공연을 참으로 긴 시간을 기다려서 보게 되었다.
공연을 본 소감은. 한마디로 경건했다. 이렇게 조용한 대중음악가수 공연은 처음이다. 클래식 공연을 보는 느낌이랄까. 감기 기운에 기침이 나려는걸 겨우겨우 참으면서 봤다. 그래도 수 천번을 들어온그의 노래는 여전히 너무 좋았고, 클래식 편곡으로 들려주는 연주 덕분에 귀가 황홀한 시간이었다.
지난 몇 년간의 크리스마스는 모두 연구실에서 보냈다. 급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느라, 채점을 하느라, 논문을 쓰느라 도무지 뭘 할 시간이 나지 않았더랬다. 내 인생에서 언제쯤의 크리스마스가 행복했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올 크리스마스는 이 시간들을 이렇게 즐기 수 있다는게 너무 어색했다. 아직 내가 가진 행복을 온전히 받아들이는데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졸업논문 패스도 했고, 정말 가고싶은 직장에 취직도 했는데 말이다. 살면서 1등을 해본 적도 별로 없고, 승리자가 된다는 느낌을 거의 가져보지 못해서 그런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기분은 영 익숙하지가 않다. 맛있는것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행복을 누리는것도 연습이 필요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