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 루시드폴

2010. 3. 4. 12:36 from 목소리
"남대문은 다시 지으면 된다. 하지만 피맛골을 다시 지을 수 있나? 피맛골을 지나가면 혈압이 오른다. 폭격맞은 서울을 보는 것 같다. 사대강은? 거기 사는 새와 개구리는 어떻게 할건가. 한 번 무너지면 재생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져 가는 것들이 있다. 그게  너무 슬프다. 용산, 그 안에는 끔찍한 논리가 있다. 거기서 얻는 무지막지한 이익을 아무도 나누려 하지 않는다. 단순히 사람이 죽은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는 애초에 사람이 없다."

김작가 블로그(GrooveTube), 루시드폴 인터뷰 중( http://zakka.egloos.com/4347352 )

술도 잘 못마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점 골목이 있다면 그곳은 피맛골이었다. 거대한 빌딩 숲 뒤에 감춰진 공간. 조선시대부터 한량들이 나와서 술을 마시던 공간. 주모의 피를 이어받은 이모님들은 언제나 큰 손을 자랑하시며 안주를 듬뿍듬뿍 주시곤 했다. 강남의 번듯한 술집의 술자리가 불편하다면 이곳은 그냥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나와도 누구 하나 뭐라하지 않을 것 같은, 도심 속 휴식처였다.  

서울시장은 어느날, 피맛골의 재개발을 추진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제 나도 종로에 가면 화부터 난다. 나의 피맛골은 어디에 있나. 이제 그 정겨운 풍경은 누가 재현해줄 수 있을까. 개발의 마수는 추억만 해체해가는게 아니다. 돈 냄새 나는 개발이 결국 피를 부른다는건 이제 너무나 많은 경험들이 증명해주지 않는가? 

난 내가 사는 공간들이 조금 더 인간적이었으면 좋겠다. 이익을 위해 인간다움을 휘발시킨 공간은 죽은 공간일 뿐이다. 지금 서울은, 오늘의 한국은 점점 그렇게 변화하고 있다. 

요즘들어 더욱 내가 이 곳에서 얼마나 버티며 살 수 있을지 걱정한다. 훌쩍 호주로 떠나버린 동생이 부럽다. 거기에서 같이 살자는 동생의 말이 이제는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오늘도 버티기 위해, 루시드폴을 듣는다. 생각을 공유하며 들을 수 있는 노래는 너무 소중하다. 그가 돌아와준게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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