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극장이란 공간은 본 영화, 같이 본 사람과 함께 추억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멀티플렉스 시대로 오면서 '공간'에 대한 추억은 거의 사라지는 것 같다. 어릴 적 살던 인천에 강변 다음으로 CGV가 생겼을 때부터 한동안 그곳은 내게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전에 영화 보러 다니던 2관짜리 중앙극장하곤 비교도 안 되는 사이즈와 시설은 영화감상의 경험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전국 어디서나 CGV를 볼 수 있게 되고, 비슷한 부류의 멀티플렉스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상황이 변했다. 영화는 이제 '꼭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전국 어느 슈퍼에서나 파는 새우깡 같은 존재로 변했다. 이제 어디서 영화를 봤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새우깡을 어디서 샀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처럼.
그런 면에서 광화문 씨네큐브는 '공간'의 의미를 온전히 간직한 몇 안 되는 극장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줄기차게 상영하는 안 유명한 영화들과,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풍기는 분위기와, 서울시내 드물게 작은 극장 크기 덕분에 함께 본 사람, 그때 본 영화와 함께 공간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