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2010. 8. 21. 12:08 from 소소한 일상

작년 5월, 일본 학회에 갔다가 그 녀석에게 선물을 사다준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일본의 편의점 잡지코너에는 남성들이 좋아하는 민망한 표지의 잡지가 가득했는데, 그 중 부록 DVD가 포함된걸로 잘 골라서 녀석에게 선물로 내밀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원칙은 '갖고는 싶지만 본인이 돈 주고 사긴 좀 그런'물건을 고르는 것이다. 이 선물도 그런 기준에 딱 부합하는 동시에, 받는 사람의 취향에 정확히 일치하면서 한국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레어아이템이라는 희소성까지 갖춘, 내가 보기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받는 녀석도 겉으론 민망해 하면서도 속으로는 매우 좋아하는걸 알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어언 1년이 지나고, 녀석이 여름 휴가로 도쿄에 여행을 다녀왔다. 가기 전 좋은 선물 사오겠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고 떠났었는데, 돌아온 날 내게 문자가 한 통 왔다.


너를 위한 선물을 사왔으니 기대해ㅋㅋ 상상 그 이상을 보여주마ㅋㅋ


도무지 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리고 살짝 불안한 마음에 요렇게 답장을 보냈다.


-뭔데? 작년에 내가 준 거랑 같은 맥락은 아니지?

내껀 모랄까, practical이랄까, 실용적 메카니즘의 산물이지ㅋ


답문을 받으니 더 궁금해져서(뭐가 실용적이란 거야?*-_-*) 전화로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그는 절대 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직접 보면 깜짝 놀랄거라며 더욱 궁금하게 만들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열흘정도 후에, 강남역으로 회의를 간 김에 사당에 사는 녀석을 만나 드디어 선물을 받았다. 사당역 던킨도너츠로 들어오는 놈의 손엔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내게 내밀면서, 선물은 주는 사람 앞에서 개봉해야 하는 거라며 어서 꺼네보란다. 쇼핑백 속 비닐봉투 속을 보니 살색의 쿠션 같은게 들어있었는데, 살짝 쇼핑백 밖으로 꺼네려다 실체를 파악하고 바로 집어넣었다. 내가 못 꺼네면 자기가 대신 해주겠다길래 그거 꺼네면 나 지금 바로 나갈거라고 하면서 극구 사양했다. 내가 당황하는 모습에 놈은 무척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 선물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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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연의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