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룩거리네

2010. 11. 6. 18:27 from 목소리
가끔은 별 도움 안 되는 힘내라는 말보다 바닥까지 깊게 침잠하는 게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군대에 있으면서 나의 빛나는 스물둘, 스물세 살이 이런 곳에서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 때, 가만히 그의 노래를 읊조리는 게 큰 위로가 되곤 했다. 병장한테 살짝 대들었다가 일주일 내내 바닥에서 벽까지 치약과 걸레로 닦아야 했을 때, 한겨울 찬물에 잘 빨리지도 않는 치약 묻은 걸레를 언 손으로 꾹꾹 짜면서 분노를 삭이기 위해 노래했다. 절룩거리네.. 사무실에서 밤새워 일하다 북한군은커녕 동네 강아지도 안 쳐들어올 것 같은 주택가 바로 건너편의 부대 탄약고에서 새벽 경계근무 나가 아침 해를 맞이하며, '아 오늘도 일당 천 원어치는 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피로가 몰려올 때 이 노래를 불렀다. 스끼다시 내 인생..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디 일어나길 기도했지만 결국 오늘 그는 세상을 떠났다. 우리네 삶도 그의 인생처럼 역전 만루홈런 따위 거의 일어나진 않는다. 그저 오늘을 열심히 살아낼 뿐이다. 그런 우리 삶에 차라리 절룩거리라고 하는 그의 노래가 어쩌면 더 큰 힘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부디 다음 세상에선 절룩거리네 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아도 됐으면 좋겠다. 당신의 인생은 스끼다시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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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연의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