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그리고 김문수

2011. 12. 30. 11:55 from 목소리
내가 처음 자취를 시작한 곳은 옛 서울대 농대 근처의 허름한 원룸이었다. 분명히 새로 만든 곳인데 이상한 냄새도 나고 우풍도 심하고, 옆집 화장실 일 보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곳이었다. 게다가 늦잠을 자려고 하면 근처 공군 비행장에서 날아온 비행기 소리에 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학교에선 자전거로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여름엔 등교하면 등이 땀으로 흥건했고, 늦가을부턴 너무 추워서 집에 가는 내내 욕을 하면서 페달을 밟아야 했다.

아마 연휴라서 방을 며칠 비웠던 날이었을 거다. 오랜만에 방에 와서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흰색 타일 바닥을 검은색의 작은 알갱이들이 뒤덮고 있었다. 이것이 쥐똥이라는 걸 깨닫는데 몇 초가 걸리지 않았는데, 군대도 다녀오고 살면서 지저분한 꼴도 많이 겪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정말 울고싶었다. 속이 올라오는 걸 참으면서 청소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데, 그날 따라 어찌나 귀가 예민해지는지 무슨 소리만 나면 저건 쥐가 아닐까 하는 맘에 한숨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1년을 버텼다. 돌이켜보면 그 집에서 살던 때가 내 삶의 바닥이었던 것 같다. 학과공부엔 아무 재미도 못 느끼고, 그렇게 성적도 바닥을 치고 있었고, 열심히 스펙이란걸 쌓는 후배들에겐 내세울 게 없던 복학생이었으니까.

그 1년간 내가 배운 건 사실 '집이라는 곳이 주는 안락함이 얼마나 중요한가?'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은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다시는 그런 곳에 살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여러 가지 것들을 갖췄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집엔 누군가가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겐 그 집이 평생에 가장 안락한 거쳐일 수도 있다. 난 그래서 여전히 그 집에서 누군가는 쥐와 싸우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삶의 모든 순간 나만의 안락함을 추구하려 할 때마다 기억려 한다. 그것이 내게는 김문수에게 분노하면서 김근태의 삶의 자세를 존중하게 하는 길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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